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매 협정 (문단 편집) === 일본 === 하매 협정에서 보인 일본군의 막장성은 이미 일본 정부가 휘하 부대 통제가 불가능하며 일본군이 얼마나 무모한 영웅심리에 빠져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일본 정부가 현지 군부대의 폭주를 제어할 수 없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일선 군부대 지휘관들의 막장 행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후 승인을 해주어 부추겼으며 심지어 화북주둔군 내부에서조차 참모장 사카이가 사령관 우메즈와 상의 없이 중국에 대한 협박을 지휘했다. 일개 참모장, 일개 무관보좌관이 외무당국을 무시하고 중일 외교관계가 대사급으로 막 승격되려는 중요한 순간에 멋대로 일을 자행한 것에 대해 일본 정계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서 톈진에 주둔한 화북주둔군이 논공행상에서 냉대 받은 울분을 풀려고 했다거나[* 사카이 참모장은 도쿄에 있던 시절 군중앙부에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퍼부어 일본 정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히로타 외상의 대중 유화외교에 반대하여 저지른 짓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6월 20일, 일본 정계의 원로인 [[사이온지 긴모치]]는 내대신 마키노에게 어전회의를 열어 확실한 방침을 정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건의했지만 오카다 수상도 마키노 내대신도 어전회의 소집에는 소극적 반응을 보였다. 6월 20일, [[히로히토]] 덴노는 장작빈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며 "북지의 사건은 진실로 유감이지만, 장제스, 왕징웨이의 친일태도에 의하여 원만하게 해결된 것은 진실로 다행이었다."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러한 일본군의 폭주는 훗날 [[루거우차오 사건]]에서 폭발하여 [[중일전쟁]]으로 이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